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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프랑스어 초판

기독교 강요 프랑스어 초판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étienne, 1541

장 칼뱅 / 크리스천 르네상스

책 소개

<기독교 강요> 프랑스어 초판의 한글 번역의 중요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입증된다. 하나는 1541년판은 이미 신학대전이 되어 버린 최종판에 비해 글쓰기의 방향이 역동적으로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두 판본을 비교해 볼 때, 최종판이 완성된 칼뱅의 모습이라면 초판은 미래를 향해 가는 미완의 칼뱅을 보여 준다. 한국 개신교는 이미 완성된 칼뱅을 가지고 한국 교회와 사회를 논해 왔다. 제네바라는 국한된 사회에서 꽃피우기보다는 움츠러든 칼뱅의 신학과 윤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못한 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려 한 것이다. 이것은 “칼뱅에서 역사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가녹치가 오래전에 지적한 대로 “역사에서 칼뱅으로”의 모습이 더 중요하다. 서구 신학사와 사상사에서 자성적으로 등장한 이 태도는 결과적으로 한국 장로교회에도 해당된다. 칼뱅이 중세 문명의 말기에 새롭게 이해한 성경 계시를 가지고 자신의 문명의 고전을 다시 해석하고 적용하는 “기독교 철학”을 꿈꿨듯이, 오늘날 칼뱅 닮기에 열정적인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문명의 고전과 종교개혁자들이 전수한 계시와의 새로운 접목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본서는 또한 두 언어의 저자 칼뱅이 어떻게 라틴어를 프랑스어로 학문화 하는제, 어떻게 자신의 모국어를 지속적으로 다듬어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두 번째 중요성을 갖는다. 칼뱅의 번역서는 17세기 근대 프랑스어 확립의 근간이 되며 그의 나라가 갖게되는 자국 중심주의와 모국어 우월주의의 원천이 된다. 칼뱅이 이 초판에서 보여준 것이 "모국어로 신학하기"라면 칼뱅 모방자들인 우리 역시 "한글로 신학하기"를 우리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장 칼뱅

장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인문학, 오를레앙과 부르주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기독교 인문주의 세계에서 활동무대를 얻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독학으로 신학을 연구하여 발표한 책 <기독교 강요>(1536)가 그를 일약 종교개혁 진영인 제네바 도시의 책사로 발탁시켜주었다(1536-1538). 그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스트라스부르의 프랑스인 교회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가(1538-1541), 다시 제네바의 청빙을 받고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활동하면서 서양의 교회와 신학, 지성과 문명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1541-1564). 비록 그가 원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데 성공한 셈이다(Cité de Calvin).
개혁파 교의학자요, 방대한 주석가며, 강해 설교자로 알려질 만큼 엄청난 대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상담과 조언, 격려와 위로, 우정과 내면의 토로를 아끼지 않았던 엄청난 양의 서신 교환자이기도 했다. 그중 27세 때 초판을 발간한 이래 23년 동안 5판에 걸쳐 개정 증보한 <기독교 강요>는 교회사에서 최고의 교의학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박건택

한국외국어대와 대학원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총신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 개신교 신학대학(M. en théologie), 파리 10대학(DEA), 파리 4대학(D. en histoire)에서 신학과 문학과 역사의 영역에서 칼뱅을 연구한 뒤, 1987년부터 2016년까지 총신 신대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다. 평생 <칼뱅 선집 총서>와 <종교개혁사상 선집>을 편집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면서 프랑스 현대 기독교 사상가인 엘륄과 리쾨르를 소개하기도 했다. 저서로 <개신교 역사와 신학>, <칼뱅의 자유사상-이론과 실제>, <자크 엘륄의 생애와 사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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