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혼돈 속에서 젊은 칼뱅은 종교개혁에 관심을 두면서도 기존의 교회와 국가 질서를 위협하는 종교개혁 급진파, 즉 재세례파와 리베르탱파로 불리는 심령파와는 거리를 두었다. 이들에게서 분리주의의 위험을 보았기 때문이다. 칼뱅은 니고데모파와 관련해서 군주에 대한 지나친 충성과 세상사에 대한 애착을 지적하며 진리와 자유를 위해 기성 교회와의 분리를 불사했지만, 제세례파에게는 그들의 무정부적 성격을 비난하고 리베르탱파의 방종을 지적하며 자유에 한계를 둔다. 결국 문제는 자유와 책임의 관계였다. 교회와 정부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려 할 때, 자유는 필연적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장 칼뱅
장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인문학, 오를레앙과 부르주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기독교 인문주의 세계에서 활동무대를 얻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독학으로 신학을 연구하여 발표한 책 <기독교 강요>(1536)가 그를 일약 종교개혁 진영인 제네바 도시의 책사로 발탁시켜주었다(1536-1538). 그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스트라스부르의 프랑스인 교회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가(1538-1541), 다시 제네바의 청빙을 받고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활동하면서 서양의 교회와 신학, 지성과 문명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1541-1564). 비록 그가 원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데 성공한 셈이다(Cité de Calvin).
개혁파 교의학자요, 방대한 주석가며, 강해 설교자로 알려질 만큼 엄청난 대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상담과 조언, 격려와 위로, 우정과 내면의 토로를 아끼지 않았던 엄청난 양의 서신 교환자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사상의 발전을 알려주는 신학 소논문들, 적대자들과 맞붙어 싸웠던 팸플릿들과 논쟁서들, 교회와 학교 설립을 위한 신앙고백서와 신앙교육서, 그리고 여러 법제들을 남겼는데, 이것들을 묶어놓은 것이 바로 <소품집> 이다.
박건택
한국외국어대와 대학원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총신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 개신교 신학대학(M. en théologie), 파리 10대학(DEA), 파리 4대학(D. en histoire)에서 신학과 문학과 역사의 영역에서 칼뱅을 연구한 뒤, 1987년부터 2016년까지 총신 신대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다. 평생 <칼뱅 선집 총서>와 <종교개혁사상 선집>을 편집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면서 프랑스 현대 기독교 사상가인 엘륄과 리쾨르를 소개하기도 했다. 저서로 <개신교 역사와 신학>, <칼뱅의 자유사상-이론과 실제>, <자크 엘륄의 생애와 사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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