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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관용론> 주석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

Senecae De dementia commentariis, 1532

장 칼뱅 · 박건택

서평

책 소개

이 책은 칼뱅이 문학도와 법학도로서 쓴 첫 작품으로 칼뱅의 정치 윤리를 보여 준다. 칼뱅은 루터의 영향을 받아 로마 가톨릭의 미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추구하였으나 이 자유가 외적으로 인간 정의의 실천과 더불어 세워진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칼뱅은 프랑스 왕에게 헌정했던 <기독교 강요> 초판 마지막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제목 아래 교회의 권세와 시민 정부의 문제를 다루었다. 한편 칼뱅이 관용을 정치 윤리의 최고 미덕으로 꼽았지만, 칼뱅의 윤리가 엄격한 정의에 가까운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기독교 국가라는 틀에서 신정 정치가 가진 위험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타락한 본성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루터가 “속 사람의 자유”를 강조했다면, 칼뱅은 “시민의 자유”에 관심이 깊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렇게 계시 윤리와 자연 윤리는 충돌할 것 같다. 그러나 둘은 개혁파 윤리에서 조화를 이룬다. 이는 개혁파 신학이 인본주의가 아니라 “근원으로!”를 기치로 내세운 인문주의를 토대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장 칼뱅

장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누아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인문학, 오를레앙과 부르주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기독교 인문주의 세계에서 활동무대를 얻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독학으로 신학을 연구하여 발표한 책 <기독교 강요>(1536)가 그를 일약 종교개혁 진영인 제네바 도시의 책사로 발탁시켜주었다(1536-1538). 그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스트라스부르의 프랑스인 교회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가(1538-1541), 다시 제네바의 청빙을 받고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활동하면서 서양의 교회와 신학, 지성과 문명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1541-1564). 비록 그가 원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데 성공한 셈이다(Cité de Calvin).
개혁파 교의학자요, 방대한 주석가며, 강해 설교자로 알려질 만큼 엄청난 대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상담과 조언, 격려와 위로, 우정과 내면의 토로를 아끼지 않았던 엄청난 양의 서신 교환자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사상의 발전을 알려주는 신학 소논문들, 적대자들과 맞붙어 싸웠던 팸플릿들과 논쟁서들, 교회와 학교 설립을 위한 신앙고백서와 신앙교육서, 그리고 여러 법제들을 남겼는데, 이것들을 묶어놓은 것이 바로 <소품집> 이다.

 

 

박건택

한국외국어대와 대학원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총신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 개신교 신학대학(M. en théologie), 파리 10대학(DEA), 파리 4대학(D. en histoire)에서 신학과 문학과 역사의 영역에서 칼뱅을 연구한 뒤, 1987년부터 2016년까지 총신 신대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다. 평생 <칼뱅 선집 총서>와 <종교개혁사상 선집>을 편집 번역하는 일에 주력하면서 프랑스 현대 기독교 사상가인 엘륄과 리쾨르를 소개하기도 했다. 저서로 <개신교 역사와 신학>, <칼뱅의 자유사상-이론과 실제>, <자크 엘륄의 생애와 사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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